다시 윤양로 씨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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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3년 9월에 써 놨던 글입니다.
석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금쪽 같은 휴가를 낸 후 근무지인 울산을 떠나 광주 목포 흑산도를 거쳐 홍도에 도착한 것은 1983년 8월 22일 오후였다. 물이 귀한 홍도에서 숙소를 정하려면 지대가 낮은 곳에 정하라는 말을 들은 터라 `넘어지면 물 닿는' 바닷가에 민박을 정했다.
저녁 무렵, 카메라를 들고 등대가 있는 쪽의 산을 올랐다. 홍도의 동쪽 마을과 서쪽의 자갈마당 해변이 모두 내려다보이는데, 방학 중인 학교 운동장에선 공을 차던 꼬마들이 6시 정각 애국가가 울리니까 모두 차렷 자세로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한다.
일몰 시 저녁노을은 섬을 붉게 물들여 홍도를 이름대로 홍도답게 하였다.
해가 진 후 산을 내려오니 민박집에서 정갈한 저녁상을 내어 놓는다. 식사 후 마루에 걸터앉아 주인에게 홍도 일주 방법을 물어보니 관광선을 타거나 어선을 전세 내면 된다고 한다. 관광선보다는 어선을 전세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값을 좀 깎을 수 없는지 더 작은 배는 없는지 물어보고 있는데 이 방 저 방 투숙한 관광객이 나와서는 함께 어선을 전세 내자고 한다. 그러자고 하고 배는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가기로 했다. 옆방의 신혼인 듯한 부부 그리고 다른 4명의 관광객 등 모두 7명이 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조반을 마치고 민박 집 주인을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미리 준비해 둔 어선에 오르니 배가 커서 선장 포함 8명이 탔는데도 헐렁할 정도다.
홍도를 일주하면서, 작은 섬에도 오르고 해안 동굴에도 들어가면서 셔터를 눌렀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맑은 하늘 아래 홍도는 그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었다. 섬 일주 중 옆방 부부의 그림(?)이 좋아 여러 컷을 촬영하고 필름도 빌려 주었는데, 난 음료수와 멀미약을 얻어먹기도 해서 한 배를 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카메라를 손질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방 부부의 남자가 커피를 한 잔 갖다 주며 식사 후 한 잔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물어 보나마나다.
식사를 마친 후 가게에서 맥주를 몇 병 사들고 바닷가로 나가니 옆방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가 봉투를 푸는데 양주 큰 놈이 나온다. 그제서야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KAL에서 근무하는 윤양로씨. 초보부부.
우린 거기 있는 술을 모두 마셔 버렸다. 감미로운 파도 소리, 더위 식히기 꼭 좋은 미풍, 끝없는 해방감. 안주가 필요 없다.
숙소에 돌아와선 윤양로씨 방에서 입가심한다며 양주 큰 놈 한 병을 더 마시고 플래시를 터트려 셋이 기념 촬영도 했다.
다음 날 난 계획대로 홍도를 떠나 목포에서 해남 대흥사 남해 상주 미조 물건 그리고 진주를 거치는데 4일을 더 보냈다. 폭염 속에 얼굴은 익어 엉망이고 옷은 소금자루가 되었다.
8월 28일 집에 돌아와서 여행 중 촬영한 필름을 현상처리하고 곳곳에서 만났던 사람과 촬영한 기념사진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냈다. 윤양로 씨 부부, 밀양축협의 친구들, 부산에서 온 멋쟁이 떼강도 등등.
1983년 9월 1일 03시 25분, 소련의 수호이15 공군전투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269명이 탑승한 KAL 007기를 향해 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며칠 뒤, KAL 탑승자들의 합동장례식 장면을 TV로 보다가 깜짝 놀랐다. 홍도에서 만났던 윤양로 씨 부인이 눈물짓고 있었다. 황급히 그 날의 신문을 찾았다.
`조난자 명단. 객실담당 승무원 사무장 윤양로 (34)'.
금년 9월 1일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참으로 기구한 또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만나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도 있고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중 윤양로 씨와의 추억은 너무나 안타깝다.
사건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KAL 007기에 대한 기사는 꼼꼼히 읽는 버릇이 있다. 옛 소련이 해체되고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사건의 숨겨진 사실이 일부 밝혀지기도 했으나 그를 생각하면 허망함만 남는다. 사실이 무엇이건 그게 죽은 사람에게 뭐란 말인가. 그는 함께 탑승한 268명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추락 시 승객들을 위해 필사적이었을 그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1993년 9월
윤양로 씨 부부와-
술에 취해 찍은 이 사진은 노출이 과하게 오버되어 필름을 재현상해 살렸다.

내가 보낸 사진을 받은 윤양로 씨 부인이 답장을 보냈다.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라는 글에 가슴이 무너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