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컨텐츠 정보
- 1,736 조회
- 5 댓글
- 목록
본문
2013년 10월 27일 마라도에서 1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마라도에 도착해서 어슬렁거리며 섬을 돌아보고 있는데 카메라를 장착한 삼각대를 어깨에 멘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마라도에 사느냐고 하길래 제주시에 사는데 마라도를 촬영하려고 왔다니까 자신은 전국의 등대를 찍으려고 하는데 맨 먼저 마라도에 왔다고 하면서 주로 어떤 걸 찍느냐고 하길래 처음 제주에 오던 1986년부터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찍고 있는데 특별한 대상은 없다고 했다. 바다도 찍고 노랗게 핀 선인장꽃도 찍고 밤하늘의 별도 찍고 불 밝힌 등대도 찍는다고 했더니 자신은 디지털 카메라를 쓴 지 얼마 안 되는데 밤에 좀 장시간 노출을 하면 저장시간이 많이 걸려 아주 불편한데 뭔 방법이 없냐고 한다. 아, 그거 아주 중요한 건데 술 많이 사면 가르쳐주겠다고 했더니 열 잔이라도 사겠다며 숙소를 묻길래 아직 안 정했다고 했더니 자신이 묵는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가자고 한다.
해 질 시간이 되어 둘이서 일몰을 찍는다고 돌아다니다 숙소에 오니 주인이 생선회를 뜨다가 우릴 보더니 오늘 아주 복 받았어요 한다. 복 받았다니 일단 기분이 좋아서 무슨 일이냐고 하니 대구에서 낚시를 온 손님 몇이서 조금 전 긴꼬리벵에돔을 엄청 낚아왔는데 이게 맛이 죽이는 고기고 흔한 고기가 아니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분들은 마지막 날 낚는 것만 집으로 가져가고 이렇게 도중에 낚는 건 모두 그냥 손님들에게 준다고 한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랴~~~
난 산행 전날엔 맥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다. 거의 혼자서 야간산행을 하는데 혹여 술 때문에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사고가 되어서 그렇다. 그러나 그날은 에이~ 오늘 사진 못 찍으면 다음에 다시 와서 찍지 뭐 마라도가 어디 가냐 하면서 마셨다. 나도 삼척에 살 땐 지독한 낚시꾼이어서 이분들과는 죽이 맞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비웠다.
어느 날 삼척 방파제에 낚시 갔다가 자살하려고 방파제에 나온 처녀를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등대 찍으러 온 젊은이가 지금 촬영하러 나가야 하는데 아까 그거 쫌 가르쳐달라고 한다. 카메라 뒤에 장시간 노출시 노이즈 제거가 디폴트 ON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OFF로 하면 됩니다 하고는 자살하려던 처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붕어는 죽어서 자란다”는 글을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고 낚시꾼과 사냥꾼의 허풍과 거짓말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난 그날 밤 그분들과 서로 허풍과 거짓말을 하느라고 사진을 접었다. 사진보다 재미있어서. 여하튼 그날 밤 그분들이 출조했던 울릉도와 알라스카의 고기까지 우린 다 잡아 먹었다.
마지막이라면서 한 분이 물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낚시를 왜 지금은 안 하십니까. 내가 사진을 하는 건 남에게 전혀 피해를 안 주지만 내가 만일 제주에서 낚시를 하면 그렇잖아도 힘들게 사는 제주 어민들 다 굶겨 죽일 거 같아서 안 합니다. 내 낚싯대가 제주바다 고기 씨를 말릴 것 같아서요. 모두 뒤로 넘어갔다. 쫌 심했나...
오늘은 7월 4일,지금 마라도엔 노란 선인장꽃이 만개했을 것이다. 생전 처음 긴꼬리벵에돔을 먹게 해 주고 내 허풍과 거짓말에 기탄 없이 박수를 쳐 주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라도에 갈 수 있는데... ^^*
1986년 가을-
맨 위 사진-그때는 선착장이 없어 배를 암벽에 대면 사람들이 그냥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국토의 막내를 방문한다고 태극기를 가져갔다.
아래-동쪽 단애에 선인장이 살고 있다.
마라도에서 소똥은 소중한 연료였다.
당연히 소도 있고
맨 아래-바다의 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이 당집이 좀 아쉽다.
마라도 산착장.
사진의 오른쪽에 시멘트 바른 곳이 있는데 선착장이 없을 때 거기로 올라갔다.
지금 한창 선인장꽃이 피고 있다.
선인장은 해국과 친한 것 같다.
'조리덕 선착장'
예전의 등대.
행복한 저녁
국토의 막내 마라도에 좀 더 자주 가야겠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사진을 남겨야겠다.







